직접 쓴 시나리오 하나로 기적 같은 캐스팅을 이뤄낸 <내가 숨쉬는 공기>의 이지호 감독이 4월 1일 공식 기자 간담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지호 감독은 4월 1일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공식 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지호 감독은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이 헐리우드에서 반응이 좋았고 그것을 계기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며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또한 언론 관계자의 뜨거운 관심에 이지호 감독은 “뜨거운 환대에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히며, 터지는 플래쉬 세례에 썬글라스가 필요할 것 같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배우자 김민도 함께 참석, 배우가 아닌 감독의 아내로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기자 간담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이지호 감독은 4/2(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의 특강 등 영화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4/4(금) 출국할 예정이다. 이지호 감독의 첫번째 헐리우드 작품이자, 헐리우드 대배우를 모두 모은 기적 같은 캐스팅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내가 숨쉬는 공기>는 4월 9일 국내 개봉한다.
<내가 숨쉬는 공기> 간담회 인터뷰
Q: 영화의 캐스팅이 돋보이는데 배우들을 어떻게 캐스팅 하였나? 어려웠던 점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배우마다 캐스팅에 얽힌 에피소드가 각각 달라서 모두 설명하기가 어렵다. 캐스팅하는데 2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일본 배우 와타나베 켄과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섭외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배우 구성이 바뀌었다.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게런티를 많이 줄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고, 배우들 각자의 스케쥴 때문에 전반적으로 캐스팅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가지 조언은 예산이 큰 영화가 아니라면,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촬영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웃음)
Q: 영화의 엔딩이 코믹하게 얽힌다. 의도된 가벼움이었나?
약간 코믹하게 보이려는 의도도 있었고, 아니러니를 보여주려는 생각도 있었다. 스토리를 보면 네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동시에 보편성을 찾고 있다. ‘슬픔’부분의 트리스타는 유일하게 나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가 끝날 때쯤 다른 세 명의 도움으로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트리스타에게 영화 자체에 어떤 답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새로운 시작점일 뿐이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을 찾은 트리스타에게 “이제 뭐 할거니”라고 되묻는 의미가 담긴 결말이다. 그런 뜻을 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벼운 터치로 처리하고 싶었다.
Q : 한국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고, 감독께서는 나의 심장은 한국에 있다라는 말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한국에서 얻었는가?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자라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국에 자주 돌아가라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96~98년 한국에서 음반 기획자로 일했다. 나는 항상 인물에 대한 기록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기록을 하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갱스터나 슬픔이라는 인물 행복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내가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발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내 자신이 나를 발견 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Q : 처음 장편영화를 헐리우드에서 찍어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헐리우드를 어떻게 진출하게 되었는가?
헐리우드 진출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헐리우드 사회는 참 폐쇄된 사회이다.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다. 운도 좋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각본을 직접 썼고, 그 각본이 반응이 좋았다. 내가 쓴 각본은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장르 영화가 아니였기 때문에 투자 받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나와 비슷한 영화를 만든 제작자 10명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 사람들을 공략하자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대본을 보냈다. 그리고 10명은 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고 하였고, 그 중 5명은 나에게 감독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 다음 전략으로서는 캐스팅에 신경쓰자고 마음 먹었다. 또 장르영화가 아니어서 투자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캐스팅에 주력했다. 그래서 캐스팅 작업을 하는데 2년이 걸린 것이다. 정말 많은 배우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저스트 팀 버레이크, 포레스트 휘태커도 있었다.
난 그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기전 철저히 사전 준비를 했다. 스토리보드도 직접 그렸고, 이것에 관련된 음악 작업도 직접 했다. 심지어 배우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무엇인지까지 알아둘 만큼 철저히 준비해서 그들을 만났다. 모두 나와 같은 방법이어야만 헐리우드에 진출한다는 법은 없다.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Q: 제작비나 개런티는 어느 정도 들었는지 궁금하다.
개런티는 총 영화 제작비가 60억, 그 중 30억 정도가 개런티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노조가 강한 헐리우드다 보니 주어진 시간 안에만 촬영 할 수 있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29일이었고, 촬영해야 할 장소는 50 곳이 넘었기 때문에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작업에 임했다.
Q : ‘희로애락’에서 슬플 ‘애’가 사랑’애’자로 변했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행복, 슬픔, 기쁨이 합쳐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왜 주요하게 넣었는가?
사랑이라는 것은 포괄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넣었다. 분노, 그리움, 안도감, 슬픔 등의 여러 감정들은 사랑을 하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리스타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난데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누구를 죽이고 싶을 만큼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내가 진짜 이 사람을 사랑한다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희노애락에 포괄적으로 넣은 것이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해주는 것 같다.
Q : 앤디 가르시아의 핑거스의 인물이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네 명의 인물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핑거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핑거스의 이름이 신적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가?
A : 핑거스는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네 명은 자아를 찾으려는 인간적인 캐릭터이지만, 핑거스는 자기가 누구인지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다. 즉, 자기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연관 돼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방식을 강요한다. 악인으로 나오지만 전형적인 악인이 아닌 현실적인 사람이다. 예를 들어 오늘 오후 두 시에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 가 있지 않은가.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핑거스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불행한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의 현실을 그리기 위해 핑거스가 태어난 것이다.
Q : 단편동화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 감독님이 나오시는데 연출쪽이 아닌 연기쪽도 생각하고 있는가?
A : 그건 제작비때문에 그런거고(웃음) 나뿐만 아니라 캐스팅감독, 제작감독, 스탭들 모두 영화에 등장한다.
김민Q : 이지호 감독의 차기작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감독과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이기적인 직업인지, 이기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은 일을 하지 말자는 약속을 결혼 전에 했다. 미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촬영으로 이동하다 보면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저만 해도 촬영이 시작되면 아내로서의 뒷바라지보다 배우로서의 욕심을 채우려 할 것이다. 서로 함께 일하면 가정이 우선되기 힘들기 때문에 혼전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그러다 보니 공동 작업의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우스갯 소리로 헐리우드에는 같이 일한 뒤 헤어지는 커플이 많아서 우리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웃음)
김민Q :두분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가?
우린 내가 미국에서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를 찍을 때 처음 만났다. 소속사 사장님이 내가 헐리우드에서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지호씨와의 만남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만나게 되었고, 결국 헐리우드로 갔다.(웃음)
Q : 영화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는가, 대학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에 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가게 된 것인가.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준 카메라를 잘 가지고 놀았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교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웨슬린대학에선 영화를 복수전공으로 들었다. 웨슬린대학에선 인문학은 해외에 나가서 지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나는 스페인을 공부하고 있어 스페인에 갔어야 했는데 이스라엘을 갈 기회가 주어졌다. 언어프로그램도 좋다고 했고, 스페인은 언제든 갈 수 있어 이스라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오자라는 생각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이스라엘 감독을 만났는데, 그는 이스라엘 고아원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다. 그는 유대인이였고, 아내는 파리에서 폭탄테러로 죽은 사람이었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속에서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었다. 웨슬린대학에는 영화프로그램이 굉장히 좋았다. 그 후 뉴욕으로 가서 영화 편집 에디터로 일을 하게 되었고, 광고 감독으로 한국(삼성)이나 유럽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김민Q : 관객으로서 내가 숨쉬는 공기를 평가한다면
관객으로서 이지호감독이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작품자체로 본다고 해도 정말 재미있다.
김민 Q: 영화촬영 중 감독이 대상포진으로 아팠을 때 김민씨가 감동적인 내조를 했다고 들었다. 임신중의 일인가? 그때의 김민씨 심정은 어땠는가?
임신 훨씬 전에 있던 일이고, 내가 알았을 때는 증상이 크게 악화된 시점이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눈에 발병되었기 때문에 혹시 뇌에 이상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의사에게 새벽 4시에 전화가 왔고, 그 다음날 오후까지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고, 멕시코 시티병원에서는 그의 병명을 알지 못해 더 걱정이 되었다. 건강을 뒤로하고 영화촬영을 하긴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하루를 지연시킬<내가 숨쉬는 공기> 간담회 인터뷰
Q: 영화의 캐스팅이 돋보이는데 배우들을 어떻게 캐스팅 하였나? 어려웠던 점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배우마다 캐스팅에 얽힌 에피소드가 각각 달라서 모두 설명하기가 어렵다. 캐스팅하는데 2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일본 배우 와타나베 켄도나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섭외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배우 구성이 바뀌었다.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캐런티를 많이 줄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고, 배우들 각자의 스케쥴 때문에 전반적으로 캐스팅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가지 조언은 예산이 큰 영화가 아니라면,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촬영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웃음)
Q: 영화의 엔딩이 코믹하게 얽힌다. 의도된 가벼움이었나?
약간 코믹하게 보이려는 의도도 있었고, 아니러니를 보여주려는 생각도 있었다. 스토리를 보면 네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동시에 보편성을 찾고 있다. ‘슬픔’부분의 트리스타는 유일하게 나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가 끝날 때쯤 다른 세 명의 도움으로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트리스타에게나 영화 자체에 어떤 답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새로운 시작점일 뿐이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을 찾은 트리스타에게 “이제 뭐 할거니”라고 되묻는 의미가 담긴 결말이다. 그런 뜻을 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벼운 터치로 처리하고 싶었다.
Q : 한국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고, 감독께서는 나의 심장은 한국에 있다라는 말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아이디어를 한국에서 얻었는가?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자라셨다. 아버지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한국에 자주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96~987년 한국에서 음반 기획자로 일했다. 나는 항상 인물에 대한 기록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기록을 하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갱스터나 슬픔이라는 인물 행복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내가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발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내 자신이 내 자신을 발견 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Q : 처음 장편영화를 헐리우드에서 찍어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헐리우드를 어떻게 진출하게 되었는가?
헐리우드 진출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헐리우드 사회는 참 페쇄된 사회이다. 뚫어 들어가기가 힘들다. 운도 좋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각본은 직접 썼고, 그 각본이 반응이 좋았다. 내가 쓴 대본은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장르 영화가 아니였기 때문에 투자 받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나와 비슷한 영화를 만든 제작자 10명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 사람을 공략하자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대본을 보냈다. 그리고 10명은 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고 하였고, 그 중 5명은 나에게 감독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 다음 전략으로서는 캐스팅에 신경쓰자고 마음 먹었다. 또 장르영화가 아니어서 투자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캐스팅에 주력했다. 그래서 캐스팅 작업을 하는데 2년이 걸린 것이다. 정말 많은 배우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저스트 팀 버레이크, 포레스트 휘태커도 있었다.
난 그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건 철저히 사전 준비를 했다. 스토리보드도 직접 그렸고, 이것에 관련된 음악 작업도 직접 했다. 심지어 배우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무엇인지 까지 알아둘 만큼 철저히 준비해서 그들을 만났다. 모두 나와 같은 방법이어야만 헐리우드에 진출한다는 법은 없다.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Q: 제작비나 개런티는 어느 정도 들었는지 궁금하다.
개런티는 총 영화 제작비가 60억, 그 중 30억 정도가 개런티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노조가 강한 헐리우드다 보니 주어진 시간 안에만 촬영 할 수 있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29일이었고, 촬영해야 할 장소는 50 곳이 넘었기 때문에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작업에 임했다.
Q : ‘희로애락’에서 슬플 ‘애’가 사랑’애’자로 변했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행복, 슬픔, 기쁨이 합쳐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왜 주요하게 넣었는가?
사랑이라는 것은 포괄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넣었다. 분노, 그리움, 안도감, 슬픔 등의 여러 감정들은 사랑을 하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리스타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난데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누구를 죽이고 싶을 만큼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내가 진짜 이 사람을 사랑한다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을 희노애락에서 포괄적으로 넣은 것이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해주는 것 같다.
Q : 앤디가르시아의 핑거스의 인물이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네 명의 인물이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핑거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핑거스의 이름이 신적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가?
A : 핑거스는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네 명은 자아를 찾으려는 인간적인 캐릭터이지만, 핑거스는 자기가 누구인지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다. 즉, 자기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연관 돼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방식을 강요한다. 악인으로 나오지만 전형적인 악인이 아닌 현실적인 사람이다. 예를 들어 오늘 오후 두 시에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 가 있지 않은가.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핑거스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불행한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의 현실을 그리기 위해 핑거스가 태어난 것이다.
Q : 단편동화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 감독님이 나오시는데 연출쪽이 아닌 연기쪽도 생각하고 있는가
A : 그건 제작비때문에 그런거고(웃음) 나뿐만 아니라 캐스팅감독, 제작감독, 스탭들 모두 영화에 등장한다.
김민Q : 이지호 감독의 차기작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감독과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이기적인 직업인지, 이기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은 일을 하지 말자는 약속을 결혼 전에 했다. 미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촬영으로 이동하다 보면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저만 해도 촬영이 시작되면 아내로서의 뒷바라지보다 배우로서의 욕심을 채우려 할 것이다. 서로 함께 일하면 가정이라는 게 우선되기 힘들기 때문에 혼전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그러다 보니 공동 작업의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우스갯 소리로 헐리우드에는 같이 일한 뒤 헤어지는 배우가 많아서 우리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웃음)
김민Q :두분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가?
우린 내가 미국에서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를 찍을 때 처음 만났다. 소속사 사장님이 내가 헐리우드에서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지호씨와의 만남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만나게 되었고, 결국 헐리우드로 갔다.
Q : 영화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는가, 대학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에 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가게 된 것인가.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준 카메라를 잘 가지고 놀았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교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웨슬린대학에선 영화를 복수전공으로 들었다. 웨슬린대학에선 인문학은 해외에 나가서 지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나는 스페인을 공부하고 있어 스페인에 갔어야 했는데 이스라엘을 갈 기회가 주어졌다. 언어프로그램도 좋다고 했고, 스페인은 언제든 갈 수 있어 이스라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오자라는 생각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이스라엘 감독을 만났는데, 그는 이스라엘 고아원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다. 그는 유대인이였고, 아내는 파리에서 폭탄테러로 죽은 사람이었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속에서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었다. 웨슬린대학에는 영화프로그램이 굉장히 좋았다. 그 후 뉴욕으로 가서 영화 편집 에디터로 일을 하게 되었고, 광고 감독으로 한국(삼성)이나 유럽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김민Q : 관객으로서 내가 숨쉬는 공기를 평가한다면
관객으로서 이지호감독이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작품자체로 본다고 해도 정말 재미있게 보인다.
김민 Q: 영화촬영 중 감독이 대상포진으로 아팠을 때 김민씨가 감동적인 내조를 했다고 들었다. 임신중의 일인가? 그때의 김민씨 심정은 어땠는가?
임신 훨씬 전에 있던 일이고, 내가 그 알았을 때는 증상이 크게 악화된 시점이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눈에 발병되었기 때문에 혹시 뇌에 이상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의사에게서 새벽 4시에 전화이 왔고, 그 다음날 오후까지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고, 멕시코 시티병원에서는 그의 병명을 알지 못해 더 걱정이 되었다. 건강을 뒤로하고 영화촬영을 하긴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하루를 지연시킬수록 3억씩 손해를 보는데 우리가 그 돈을 댈 수 없는 상황이기에 계속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영화를 안 찍고 포기할 수 있겠느냐”했더니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일어나라”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한테 지독했다고 말하더라. 그때 일어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병원과 촬영장을 왔다갔다하며 10일간 촬영을 지속했다.
Q : 김민씨가 내조했을 때 감독의 심정도 듣고 싶다.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프고,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해야 하나”싶어 부인앞에서 울고 말았다. 난 그녀의 도움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한 장면 찍고 옆방에서 토하고, 다시 녹음된 것을 듣고 하는 방식으로 진행시켜 나갔다. 아내가 항상 제 옆에 있었고 포기하지 않게 격려해 주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능했다.
스탭들도 합심해서 “우리 열심히 해보자, 꼭 끝내자”라며 말했다. 내가 너무나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으며 배운 것이 있다면 감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의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앤디 가르시아도 처음엔 참 캐스팅 하기 힘든 배우였는데 영화 막바지 촬영 때는 신뢰가 많이 쌓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이지호 감독이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우리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합심해서 도와주자” 이렇게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앞장서 주고, 촬영해 임해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수록 3억씩 손해를 보는데 우리가 그 돈을 댈 수 없는 상황이기에 계속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영화를 안 찍고 포기할 수 있겠느냐”했더니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일어나라”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한테 지독했다고 말하더라. 그때 일어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하며 10일간 촬영을 지속했다.
Q : 김민씨가 내조했을 때 감독의 심정도 듣고 싶다.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프고,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해야 하나”싶어 부인앞에서 울고 말았다. 난 그녀의 도움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한 장면 찍고 옆방에서 토하고, 다시 녹음된 것을 듣고 하는 방식으로 진행시켜 나갔다. 아내가 항상 제 옆에 있었고 포기하지 않게 격려해 주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능했다.
스탭들도 합심해서 “우리 열심히 해보자, 꼭 끝내자”라며 말했다. 내가 너무나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으며 배운 것이 있다면 감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의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앤디 가르시아도 처음엔 참 캐스팅 하기 힘든 배우였는데 영화 막바지 촬영 때는 신뢰가 많이 쌓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이지호 감독이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우리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합심해서 도와주자” 이렇게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앞장서 주고, 촬영해 임해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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