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정부 조직 개편에 관한 의견서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노고에 진지한 감사를 표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한 좋은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정부 부처 조정은 시대 변화에 따라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 과제는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기능성이나 단기적 효율성 보다는 ‘국가의 미래 비전’이라는 틀에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학 유관 전공자들로서 여성학회장을 역임했던 저희들은 새로운 정부가 이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여성가족부의 존치 및 강화를 요청하는 의견을 모아 보냅니다.
여성가족부의 존치와 강화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여성부는 여성계와 여성학계의 오랜 숙원과 시대적 여망에 따라 2001년에 신설된 부처입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여성 관련 업무를 일원화하고, ‘성평등’이라는 미래가치를 현실화해낼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설립되었습니다. 2005년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한 것은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임을 알게 된 시점에서 그간의 일, 경제, 남성 중심적 성장주의가 초래한 문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개편이었습니다.
여성과 가족은 현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하는 정책 대상입니다. 가족을 기능으로 접근한다면 가족 외의 여러 제도들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여 지고 따라서 그 기능을 가장 많이 흡수한 부처로 보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많은 기능을 다른 제도들에 양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능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유일한 제도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새롭게 정의되고 해석되어야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또한 사회구성원의 기본적 ‘관계’를 만들고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성부의 이름에 여성이라는 명사를 사용하여, 여성부가 여타 기능위주의 부서와는 다른 차원의 기구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간 여성가족부가 짧은 기간이나마 보육을 맡아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관점과 일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하느라고 약간의 시행착오와 불협화음이 생겨났지만, 시행착오와 불협화음 없이 후기 산업화 시대로의 전환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에서는 후기 산업화 국민을 키우는 일의 상당부분은 여성가족부에 맡겨져서, 새로운 인재들을 키워내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시대를 위한 기틀을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좋은 나라’란 모든 국민/시민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돌보면서 나름의 자존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사는 나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이주해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그 땅에 머물러 자녀를 낳고 기르고 싶어지는 나라일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이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안 좋은 나라’에 속합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국가 중 하나인 반면, 자살률은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며, 청년 취업률 역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합니다.
저소득층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젖을 먹여보지도 못하고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도 높아지기만 하는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침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에 시달리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도 없고, 때로 귀찮아하며 방치하거나 학대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고소득층 어머니들은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는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교육 컨설턴트까지 고용하여 아이를 키우느라 자가용 안에서만 자녀를 만난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자기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어른으로 자랄 가능성이 많습니다. 국가에게는 아주 큰 부담인구가 되는 것이지요.
자녀를 낳은 부모와 아이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자녀들이 적절한 나이에 집을 떠나 독립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특히 자녀를 길러온 여성들의 관점과 경험이 중시되는 정책을 펼쳐야 하고, 그 일은 남성들이 아니라 장기적 비전을 가진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서 이루어내야 할 일입니다.
글로벌 이동의 시대에 ‘다양한 국민들’을 포용하는 부처가 필요합니다.
이주 노동자와 글로벌 인재들이 해마다 쏟아져 들어와 한국의 인구수를 불려주는 글로벌 시대가 왔습니다.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간 한국 사회는 민족 동질성을 강조하면서 항일 운동을 했고, 또한 압축적인 근대화를 추진해온 편입니다. 이는 매우 강한 응집력을 갖게 한다는 면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내었지만, 지금은 그 배타성과 획일적 경향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재들을 불러보아 한국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다양성을 포용하고 그것들을 조직화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입니다. 낯선 존재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쉽게 낯을 익히고, 공존하고, 협력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자질입니다.
여성부의 출현은 바로 이런 다름을 포용해낼 시대를 준비하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부처 설립 시부터 강조해온 ‘성주류화’의 핵심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그 차이가 대립이나 갈등이 아닌 상생과 공존과 시너지를 내는 관계로 성숙시켜내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지 지수를 높인다는 것은 바로 차이에 대한 인식과 소통력을 높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주노동이 활발해지고 국민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는 시점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살려내는 새로운 공동체의 터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국민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합의구조를 만들어 갈수만 있다면 한국사회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낼 것입니다. 여성부가 그간 그런 전환의 씨앗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며, 이것이 바로 작지만 큰일을 하고 있는 여성가족부를 확대 강화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인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 부처가 필요합니다.
선진국에 진입하게 되면 ‘선진화’의 척도는 더 이상 ‘경제 성장’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신임할만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부 출현 초기부터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함으로 인력을 키워내고,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것에 집중해왔습니다. 당시 여성부 출현이 그토록 세계적 주목을 끈 이유도 대부분의 선진국들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직이나 법의 개혁으로만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정부의 사례를 통해서도 익히 알게 된 사실일 것입니다. 조직이 변하려면 조직 문화가 변해야 하고 사람이 변해야 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출이 필요합니다. 변화는 관계의 차원, 그리고 친밀성과 감정의 차원의 변화 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후기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동기와 소통능력의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여성가족부가 집중적으로 해내야 할 일은 사회 갈등과 외로움, 그리고 관계의 위기를 타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일일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여성가족부의 존치, 및 강화를 요청하는 것은 바로 여성부가 일반 부처와 달리 미래가치를 심어가는 새로운 부처의 모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발전과 변화의 와중에 여성가족부가 그 시대적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이 제대로 받쳐주는 독자적 기구로 확대 개편해주기 바랍니다. 아이를 키우고 소통을 통한 상생적 관계와 돌봄의 가치를 중시해온 여성들이 바라마지 않는 ‘돌봄/섬김 사회’로의 확실한 전환점을 마련해내실 수 있기 바랍니다. 다음 세대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어머니들, 아이의 행복을 길게 내다볼 줄 아는 어머니들의 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사회적 모성’을 통해 후기 산업화 시대를 열어갈 때 지속적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며, 한국사회는 여성부를 만든 때처럼 세계 사회의 축복을 받으며 지속가능한 성장의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며 지도자의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새로운 국가 공동체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시느라 고심과 노고를 거듭하시는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인수위원장님께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한국여성학회 역대 회장
윤후정(제1, 2대 회장, 이화여대 재단이사장), 조형(제10대 회장, 이화여대 교수), 조은(제14대 회장, 동국대 교수), 장필화(제16대 회장, 이화여대 교수), 조옥라(제18대 회장, 서강대 교수), 이영자(제19대 회장, 가톨릭대 교수), 김태현(제20대 회장, 성신여대 교수), 이혜경(제21대 회장, 연세대 교수), 이상화(제22대 회장, 이화여대 교수), 윤형숙(제23대 회장, 목포대 교수), 조혜정(제24대 현 회장, 연세대 교수), 최현무(제25대 차기회장, 서강대 교수)
'StarN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폰지] <빨간풍선> 허우 샤오시엔 감독 전격 내한 (0) | 2008.01.12 |
---|---|
일본 극단 D.K HOLLYWOOD, 'We are The Sperm Cells' 제작발표회 (0) | 2008.01.11 |
헬게이트: 런던, 런칭 페스티벌 현장 사진 (0) | 2008.01.11 |
헬게이트: 런던, 빌 로퍼 인터뷰 (0) | 2008.01.11 |
헬게이트: 런던, 1월 12일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0) | 2008.01.11 |